사람들 · 순문학 · 말을 아끼는 사람
형용사를 지우면 남는 것 — 김훈의 문장
이 칸의 원형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김훈이다. 기자로 일할 때의 산문과 소설의 문장이 같은 규칙 위에 있다. 짧은 단문이 기본 단위이고, 한 문장에 주어 하나와 동사 하나가 원칙에 가깝다. 긴 문장은 접속으로 잇지 않고 끊는다.
형용사와 부사를 의도적으로 걷어낸다. 슬프다고 쓰는 대신 몸의 무게와 냄새와 온도를 쓴다. 감정은 문장 안에 없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생긴다. 이 사이트의 진단이 “감정을 이름으로 부른 말이 없습니다”를 근거로 내놓을 때, 그 기준이 되는 글이 이쪽이다.
종결은 명사나 “~였다”가 잦다. 감탄과 의문이 거의 없다. 조사 하나(‘은/는’과 ‘이/가’)를 고르는 데 공을 들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고, 문장의 초점이 조사로 조절된다. 한자어 명사와 순우리말 동사가 짝을 이룬다. 적, 진, 시신 같은 명사가 ‘먹었다’, ‘걸었다’ 같은 동사와 만난다.
같은 명사가 문단 안에서 세 번쯤 되풀이되며 무게를 얻는다. 이것 때문에 이 칸은 리듬감 있게·차갑게와 이웃한다. 되풀이가 리듬을 만들면 그쪽이고, 되풀이가 무게만 만들면 이쪽이다.
따라 쓸 때의 함정은 단문만 쌓는 것이다. 단문만 쌓으면 딱딱하고 단조롭다. 원형은 중간에 긴 문장을 한 번씩 섞는다. 그 한 번이 없으면 문체가 아니라 메모가 된다.